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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陽曆의 어제와 오늘

금정산사내 2007. 11. 21. 10:35
 

太陽曆의 어제와 오늘


1. 歷史속에서 사라진 날짜들


왜 2월은 28일이고 8월은 31일인가?

자신의 생일이 있는 달을 하루씩 늘렸던 로마 皇帝들의 고집. 부활절을 맞추려고 날짜를 삭제해버린 일화를 양력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우리와 다른 세계 여러 민족의 달력과, 미래의 달력 화성력을 통해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을 평가해보자.

현재 우리가 쓰는 태양력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태양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로마시대부터다.

고대 서양에서는 한 해가 시작하는 날을 春分날로 정했다. 때문에 춘분이 들어있는 달을 1월로 정했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동지날을 기준으로 해 冬至가 들어있는 달을 한 해의 시작으로 했다.

고대 로마시대 초기의 로물루스 시대에는 춘분일을 일년의 시작으로 하고 일년을 10개월로 했다. 또한 일년의 길이는 304일로 하는 기이한 달력을 사용했다.

그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누마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710년경에 2개월 을 추가해 1년을 12개월로 하고, 길이를 3백55일로 하는 누마(Numa)력으로 개력했다. 그러나 이 달력은 여전히 1태양년의 실제 길이와 11일 정도 차이가 나 사용하는데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2. 시저의 생일은 7월에

  그 뒤 율리우스 시저의 집권시대인 BC 46년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인 소시게네스의 조언으로 1년을 365일로 하는 새 달력을 만들었다.

달력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한 달의 길이를 31일과 30일을 번갈아 넣었다. 달의 크기는 원칙적으로 홀수인 달은 31일로 하고, 짝수 달은 작은 달은 30일 로 정했다.

그런데 평년을 365일로 하기 위해 2월에서 하루를 떼어내 29일로 하고, 윤년인 경우는 2월을 30일로 했다. 춘분날은 누마왕 때와 마찬 가지로 3월 23일로 정했다. 태양력의 1년의 길이는 365.25일로 해 4년마다 閏年을 두었다. 이것을 율리우스력(Julius calendar)라 한다.

율리우스가 개력을 할 때 계절과 달력의 날짜가 3개월이나 차이가 나 있었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23일짜리 윤달과 67일짜리 윤달을 끼워 넣어 계절을 맞추었다.

때문에 기원전 46년은 실제로 445일이나 되는 긴 해였다. 율리우스는 개력 이후부터 달력을 계절에 맞추기 위해 기존의 1월을 3월로 하고 그 앞에 새로 두 달을 넣었다. 이에 따라 모든 달이 두 달씩 미뤄져 당시에 5월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가 7월이 됐다.

율리우스는 생일이 7월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7월달의 본래 명칭인 퀸틸리스(Quintilis)를 자신의 생일달의 의미를 가진 율리(July)로 개칭했다.

따라서 7월(July)의 영어 명칭은 율리우스의 생일달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3. 역사에 잊혀진 네로의 달

율리우스가 브루투스에게 시해된 후 로마 황제로 등극한 이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이다.

그도 율리우스를 본 받아 달력에 이름을 남기려고 했다. 그는 트라키아와 아크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8월달의 본래 명칭을 바꾸었다.

그의 생일은 8월이었는데, 아우구스투스가 8월의 명칭을 바꾼 것은 자신의 생일달을 기념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그는 이달의 본래 명칭인 섹스틸리스 (Sextilis, 제6번째 달이는 의미)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바꾸었다.

더욱이 황제인 자신의 달이 다른 달보다 작으면 황제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는 다면서 2월에서 하루를 떼어와 31일의 큰 달로 변경했다.

이 때문에 1월에서 7월까지는 홀수인 달이 큰 달이 되고, 7월과 8월이 연속해서 큰달이 됐다. 그리고 8월부터 12월까지는 짝수 달이 큰 달이 됐다. 이 때문에 2월달이 다른 달에 비해 유난히 작아져 버렸다.


양력은 태양의 운행 에 따라 1년의 길이를 정했지만, 달의 길이는 임의대로 정했졌던 것이다. 그 후, 악명이 높던 네로 황제는 이들을 본따 4월을 자신의 달인 네로네우스 (Neroneus)로 고쳤지만, 네로 황제의 사후에 다시 본래의 명칭으로 되돌아 왔다.


4. 1년에 11분, 1천년에 10일 차이

  율리우스력에서 채택한 1년의 길이는 실제의 1년 길이인 365.2422일에 비해 0.0078일이 길다. 이는 약 11분 14초에 해당한다. 따라서 1백28년이 지날 때마다 태양년의 길이가 하루씩 더 길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춘분날이 1백28년마다 하루씩 앞당겨지게 돼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 때까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1582년에 춘분날은 3월 11일로 본래의 위치에서 이미 10일이나 크게 앞당겨져 있었고 이는 종교적으로 큰 문제였다.

당시 유럽의 모든 국가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행사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날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은 춘분날 후 첫번째 오는 보름을 지나 첫번째 일요일날로 정해졌다.

만일 첫번째 오는 보름날과 일요일이 겹쳐지면 다음 주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킨다. 결과적으로 춘분이 앞당겨져 부활절도 앞당겨지게 된 것이다.

그레고리 13세는 이를 본래 지키던 부활절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 개력을 단행 했다.

새로운 달력에서는 우선 1태양년의 길이가 실제와 거의 같도록 윤년의 횟수를 조정했다. 서기 년도가 4로 나누어지는 해를 윤년으로 정하고, 동시에 100으로 나누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다시 400으로도 나누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서기 1900년은 평년이고, 서기 2000년은 윤년이 되는 셈이다. 이런 원리로 400년 간 윤년을 1백회 두던 규칙을 97회 두는 것으로 고쳤다. 이렇게 하면 1태양년의 길이가 365.2425일이 돼 실제의 길이인 365.2422일과 거의 유사한 값이 된다.


5. 復活節 맞추려고 10일 빼먹어

  다시 춘분날의 위치를 부활절 제정 당시의 날짜인 3월 21일로 되돌려 놓기 위해 1582년 10월 4일 목요일의 다음날을 1582년 10월 15일 금요일로 변경했다.

따라서 1583년부터는 춘분날이 3월 21일로 밀려나게 되었다.

하지만 158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의 날짜는 존재하지 않는 날이 됐다. 이 때 날짜는 열흘을 건너 뛰었지만 요일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를 그레고리력이라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이 이것이다.

그레고리 13세는 교황의 직권으로 개력을 단행했지만 서구 유럽의 모든 나라가 개력과 동시에 이 달력을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개력 직후에 지중해의 이탈리아와 서편 연안 국가에서는 즉시 채택됐지만, 독일과 네덜란드의 신교국과 덴마크는 1700년경에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뒤늦게 1752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1917년 러시아혁명기까지 율리우스력을 계속 사용해왔는데 이 때문에 부활절은 13일이나 차이가 났다.

러시아는 결국 혁명후인 1918년 2월 13일에서 13일을 끊어버리고 새역법에 따랐다.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 음력 9월 9일에 내린 고종황제의 조칙에 의해 그 해의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해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양력이 쓰인 것이다. 이 해에 양력을 사용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연호를 건양원년(建陽元年)이라 했다.

                                                                       이용복(서울교대 교수, 지구과학과)